담임목사칼럼

목숨을 건 충성

박혜성목사 2017.11.23 16:02 조회 수 : 65

No.45 “목숨을 건 충성” (2017년 11월 5일)

사각형입니다. 린도전서 4장 2절에 보면,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습니다. 또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하반 절에 보면,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사무엘하 23장 13절-17절에 보면, 다윗 주변의 세 장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 장수는 생명을 걸고 다윗을 위해 충성했습니다. 생명을 거는 것은 자기 땀, 자기 시간, 자기 에너지, 자기 돈, 자기 생명을 다 쏟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성가 중 이제 내가 살아도 라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살고 /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네

하늘 영광 보여 주며 날 오라 하네 / 할렐루야 찬송하며 주께 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그리고 이 세 장수는 끝까지 다윗을 위해 싸웠습니다. 아비새는 변함없이 끝까지 다윗을 위해 싸웠습니다. 생명을 다하는 것은 끝까지 변함이 없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미국 서부에서는 야생마를 길들일 때 나귀와 같이 묶어 놓습니다. 나귀와 같이 밧줄로 묶어 놓으면 말이 코 방귀뀌며 껑충껑충 뛰어다니면서 나귀를 끌고 다닙니다. 먼 산으로 껑충껑충 뛰어다니면서 나귀를 떨쳐버리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밧줄로 묶어 놓았기 때문에 나귀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말이 지치게 됩니다. 그래서 며칠 뒤에는 나귀가 말을 끌고 옵니다. 말이 끌려옵니다. 백 마리를 훈련시켜도 똑같습니다. 처음에는 말이 껑충껑충 뛰어다니면서 나귀를 우습게보지만, 나중에는 말이 나귀에게 끌려오는 것입니다. 당나귀는 인내심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북교동성결 가족 여러분 말처럼 충성하면 안 됩니다. 한 때는 혼자 충성을 다하는 것같이 그냥 껑충껑충 뛰어다니다가 나중에는 억지로 끌려 다니지 말고, 변함없이 충성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