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칼럼

No.44 “하나님의 사람의 용기(6)-변치 않는 용기(1)” (2016년 10월 30일)

 

사각형입니다. 니엘과 세 친구는 일단 뜻을 정했으면 끝까지 굽히지 않았습니다. 다시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환경이 변했다고 달라질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결단과 자신의 행위로써 초래되는 어떠한 고통과 손해도, 어떠한 불이익도 그는 전적으로 감수할 자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해서, 자신이 결정한 일에 대해서,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종말론적 결단이라고 합니다. 생사(生死)가 걸려 있다 해도 초지(初志)를 굽히지 않습니다. 천지개벽이 일어나도 굽히지 않습니다. 오늘 정한 이 뜻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지킵니다. 이런 사람이 용기의 사람입니다. 상황이 달라졌다느니, 세태가 달라졌다느니, 때가 때인 만큼 어쩔 수 없다느니 하고 어물쩍 변절하는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그들 앞에 열린 형통의 길, 잘살 수 있는 길을 거부했습니다. 정결하게 살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로해서 실격이 되고, 불명예를 겪고, 심지어는 죽음이 온다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다니엘 3장에서 우리는 참으로 장엄하고도 귀한 장면을 목도하게 됩니다. 느부갓네살이 거대한 황금신상을 세우고 낙성 의식을 치릅니다. 나라의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그 신상에 절을 하도록 명합니다. 그러나 지방장관으로 있던 다니엘의 세 친구는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세 친구는 왕 앞에 끌려왔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무섭게 눈을 부라립니다(단 3:14-15). 곁에서는 과연 풀무불이 극렬히 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이여"하고 세 사람은 당당하게 입을 열어 말합니다(단 3:16-18).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풀무 가운데서 건져내주시지 아니한다 하여도 우리는 결코 우상 앞에 절할 수 없습니다.’ 이는 엄청난 용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노기등등해진 느부갓네살의 명으로 일곱 배나 더 뜨겁게 지핀 풀무불 속에 던져졌습니다. 얼마나 뜨거웠으면 그들을 던져 넣던 병사들마저 타죽었겠습니까? 그러나 세 사람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머리카락 한 올도 그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이것이 신앙적 용기입니다.

사랑하는 북교동 가족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변치 않는 마음과 용기를 가지고 한 주간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